김자옥은 1970년대 안방극장의 트로카 중 한 명으로,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김자옥의 생전 가슴아픈 이야기가 전해지며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자옥은 말년에는 중년의 여인 역을 주로 맡았지만, 사실 1970년대에 하이틴 스타로 활약한 배우인데요.
귀여운 외모와 호감 가는 인상으로 데뷔 이후부터 쭉 엄청난 인기를 끈 대배우 중 한 명이죠. 김자옥은 김영애, 한혜숙과 더불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는데요.
김영애, 이효춘도 유명하긴 했지만 김자옥과 출연하면 이들 조차 주조연으로 밀려날 정도로 김자옥의 위세는 다른 배우에 비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김자옥은 2014년 봄,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종영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는데, 사실 전에 발병했던 대장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치료 중인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2014년 11월 16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며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공주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
김자옥은 1990년대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했는데, 1996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 조혜련과 출연해 공주병 여고생 컨셉으로 열연하게 됩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김자옥이 출연한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개그 코너는 대히트를 치게 되는데, 이후 태진아의 도움을 받아 ‘공주는 외로워’라는 곡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실제로 가수 활동 당시 화려한 드레스와 팔목 장갑을 끼우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노래하는 등 공주 컨셉으로 활동했는데, 제 2의 전성기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화재가 되었죠.
당시 김자옥이 고백하기를 본인이 우울증이 있었는데 가수 활동을 하며 우울증이 나았다고 합니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어린 시절
김자옥의 아버지는 시인 김상화인데, 어릴 적 아버지의 바람기가 심해 가족 모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김자옥에게 “네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 “밤에 화재가 났을 때 네 아버지를 안 깨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또 친언니는 우울증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데요. 언니는 결혼 후 자녀가 있었지만, 김자옥을 만나면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투병 생활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치료 후 어느정도 병변이 회복되어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며 연예활동을 재개하게 됩니다.
이후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쉬지않고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요. 2013년 말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여 “그동안 암 수술과 공황장애 등을 치료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김자옥이 남편에게 부탁한다며 건낸 말
가수 오승근은 ‘건강한 집’에 출연하여 김자옥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을 소개했습니다.
방송에서 조영구가 “충북 청주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있냐”고 묻자, 오승근은 “(청주에) 연고는 없으나 경치가 너무 좋아서 내려왔다. 이곳에 아내의 추모관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오승근의 침실에는 김자옥이 생전에 사용하던 화장대를 비롯해 그녀가 좋아했던 장미꽃 조화, 그녀의 마지막 편지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김자옥이 무려 25년 동안 사용했다는 화장대에 대해 오승근은 “버릴 수도 없고, 누굴 줄 수도 없어서 그냥 내가 쓰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또 그는 장미꽃 조화에 대해 “(아내가) 외국에서 사 온 것으로, 이것도 15년 정도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오승근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이 ‘아들 잘 부탁한다’였다”며 “당시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였다. 아내가 패물 등도 준비를 다 해놨는데 그걸 주지도 못한 채 떠났다”고 회상했습니다.
오승근은 “(아내가) 곁에서 힘도 주고, 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아내를 보내고 많이 후회했다. 원없이 더 잘해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