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은 백혈병 다음으로 빈도가 높은 악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마블 시리즈에서 ‘헐크’ 역할을 맡았던 배우 마크 러팔로가 뇌종양과 안면바미를 앓았던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 뿐인 동생을 잃은 슬픔까지 겪었다고 하는데요.
마블 히어로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 헐크 역할을 맡았던 마크 러팔로의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마크 러팔로의 유년 시절
페인트공 아버지와 미용사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마크 러팔로는 학창시절 난독증과 ADHD 때문에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레슬링 선수로도 활동했다고 하는데요. 대학교에서 체육 특기자로 전액 장학생 입학 제의까지 받을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무렵 부모가 파산하고 이혼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는데요.
고등학교 졸업 후 러팔로는 부모와 함께 지내던 버지니아주를 떠나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텔라 애들러 연기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연기학교에 진학했지만 생활고가 계속되며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당시 친하게 지내던 절친이 자살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됩니다.
부모의 부재, 계속되는 생활고, 절친의 자살 등의 이유로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죽은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사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마크 러팔로의 데뷔
정신을 다잡고 연기학교로 돌아간 러팔로는 6년만에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 후 800번이 넘는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기나긴 무명 세월을 견디며 8년 간 페인트공, 바텐더,도어맨 등의 온갖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하는데요.
그가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외모, 173cm의 크지 않은 키가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극작가 케네스 로네건의 연극 <이것이 우리의 청춘>에 출연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그 인연으로 로네건의 장편영화 데뷔작<유 캔 카운트 온 미>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이 작품으로 러팔로는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고 “제2의 말론 브란도(21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꼽히는 할리우드 스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합니다.
러팔로에게 닥친 첫번째 위기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려고 하던 그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러팔로에게 뇌종양이라는 큰 위기가 닥쳐옵니다.
뇌종양 선고를 받은 당시 러팔로의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이어서 수술 며칠 전까지도 차마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러팔로는 수술 전 자신이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해 아이에게 줄 비디오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골프공 크기의 종양을 제거하는데 성공해 생사의 고비를 넘겼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청각을 상실과 안면마비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1년간 매일 아침 한 시간동안 얼굴을 움직이고 재활운동을 한 끝에 마비가 풀리기 시작는데요. 끝난다고만 생각했던 배우 생활이 드디어 다시 꽃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러팔로에게 닥친 두번째 위기
배우로 재기한 그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이터널 선샤인>, <눈먼자들의도시>, <셔터 아일랜드>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지평을 넓혀갑니다.
그러던 중,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에게 또 한 번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오는데요. 바로 남동생 스캇 러팔로의 사망입니다.
남동생은 머리 뒤편에 총상을 입고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동생의 사망은 타살로 추정되었지만 끝끝내 해결되지 못하고 미제 살인사건으로 마감되었다고 합니다.
동생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러팔로는 연기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라는 영화에 출연하는데요.
동생의 살아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에 대한 오마쥬로 맡은 역할을 연기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의 해방을 느끼고 배우로서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러팔로는 <에브리바디 올라잇>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는데요.
그 후 <에브리바디 올라잇>에 이어 <폭스캐처>, <스포트라이트>로 세 번씩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확실하게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영화배우라는 직업에 그치지 않고 사회, 환경운동가로 영역을 넓혀갑니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가 된 러팔로
동생의 죽음은 연기 철학 뿐만 아니라 가족의 거주 환경에도 영향을 끼쳐 러팔로는 가족들과 뉴욕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한 동네에서 셰일 가스 회사들이 주민들의 반대에도 셰일 가스 대규모 채취 개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운동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특히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수질 오염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타 배우들처럼 기부금을 내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활동중이다 보니 ‘연기나 할 것이지 오지랖 부린다’며 비난하는 안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러나 러팔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승리 러팔로
우리나라에서는 <어벤져스>, <나우 유 씨 미>, <비긴 어게인> 등으로 알려진 마크 러플러, 알면 알수록 본받을 만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800번의 오디션, 뇌종양, 안면마비, 동생의 죽음 등과 같이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그가 맡았던 배역인 헐크보다 더 대단해 보입니다.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끈기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의지, 유쾌하고 진중한 성격, 환경보호가로서 가지고 있는 굳건한 신념과 그에 따른 행보를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