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가대표로 헌신해 올림픽에서 활약했던 농구선수 ‘김영희’가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사망했습니다.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투병을 시작하면서부터 현재까지의 근황과 병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습니다.
거인병으로 인해 기구한 삶을 산 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여자 농구계의 영웅에서 급작스러운 은퇴까지
김영희의 과거 선수시절의 이력은 화려했습니다.
일단 키가 2미터를 넘는 보기드문 장신의 선수였는데요. 숭의여고를 졸업한 이후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1984년 LA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습니다.
올림픽에서는 무려 은메달을 따내는데 기여했고 이후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을 수여받았는데요.
한국화장품 실업농구팀의 일원으로 코트를 누볐던 김영희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태평양 화학과의 ‘화장품 라이벌전’의 주역으로 여자 농구 팬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거인병(말단비대증)을 앓게 되며 급작스럽게 은퇴를 하게되는데요.
결국 건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다, 뇌종양, 갑상선 질환 등의 합병증을 앓으며 힘겨운 투병 생활을 지속해 왔다고 합니다.
“외출하면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김영희가 전했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
그러던 지난 달 31일, 요양원에 머물며 힘겹게 병마와 싸우던 김영희가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지난 2021년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나와 자신의 힘들었던 투병 생활과 근황을 전했었는데요.
김영희는 1987년 훈련 도중 급작스럽게 반신 마비를 겪고 시력의 손상을 입어 의료진의 진단을 받고 거인병(말단비대증) 판정을 받게 되었다고합니다.
하지만 그 전인 1984년 부터 이미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김영희는 “LA올림픽을 마치고 왔을 때도 몸이 엄청 커졌는데, 당시 감독님은 단순히 살이 찐 줄 알았다. 그 시대는 정보가 없던 시절이었다”고 이야기 해 많은 네티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는데요.
이어 “당시 하루 15알의 진통제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고 이야기하며 “뇌 수술 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저게 사람이냐, 여자냐 남자냐 수군대며 비웃었다”며 힘겨웠던 투병 생활을 고백했습니다.
심지어 중학생 여러명이 집에 찾아와 “거인 나와라”라며 소리를 쳤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려주었는데요.
이로 인해 수 년 간의 칩거 생활을 이어나가다 결국 불안증과 우울증이 찾아왔고 영하로 내려간 기온에도 창문조차 닫지 않은 채 방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같이 털어놓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인터뷰에서 매월 70만원 상당의 올림픽 연금으로 생활 중이라며 급작스러운 은퇴 이후 투병하며 어려웠던 생활도 고백했는데요.
김영희는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했던 허재와 후배 선수 서장훈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어 고맙고 마음이 따뜻하다”고 전해 두 사람의 미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농구계 뿐 만 아니라, 정부도 손을 뻗어 김영희의 치료를 도왔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가 특별 보조금 천만원을 보내 그의 치료를 도왔습니다.
심지어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까지 가세 해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네티즌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었는데 너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시대만 조금 더 잘 타고나셨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진 않았을 것 같다”, “유튜브에 나오기 전까지 정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게 믿기질 않는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